핵심 요약
- 시골 동네의 명절 신호: 점방(작은 슈퍼)에 진열되던 장난감 총과 폭죽 소리
- 명절 전 필수 코스: 사촌 형과 함께 가던 대중목욕탕과 바나나맛 우유
- 엄격했던 명절 문화: 문을 활짝 열고 마당에서 지내던 추운 차례상과 산속 성묘
- 현재의 변화: 아프리카 출신 아내와 딸을 둔 40대 아빠가 느끼는 명절 의미의 변화
얼마 전 한국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지났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4년 반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네요. 호주에서의 6년까지 합치면, 제 20대와 30대 초반의 대부분은 타국에서 보낸 셈입니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아프리카 출신의 아내, 그리고 이른둥이로 태어났지만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는 예쁜 딸과 함께 화성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편리한 한국 아파트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진 지금, 제가 나고 자란 경남 창원의 시골 풍경은 참 멀게만 느껴집니다.
사회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명절을 대하는 감정이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느꼈던 설날과 추석의 분위기는 지금과 참 많이 다릅니다.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타향에 정착한 지금, 외국인 친구들이나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90년대 설날 풍경’이 어땠는지, 제 어린 시절의 타임머신을 태워드리고 싶습니다.
1. 폭죽 소리와 동네 점방의 변신
저는 창원의 한 시골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90년대 한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였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처럼 “먹을 게 없어서 산에 올라가 풀뿌리를 캐어 국을 끓여 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저희에겐 옛날이야기였습니다.
명절이 다가온다는 걸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은 동네의 작은 슈퍼, 일명 ‘점방’이었습니다. 시골이라 동네에 슈퍼가 딱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는 어르신들이 모여 옥수수나 고구마를 나눠 드시며 화투를 치고 동네 소문을 나누는 사랑방이었습니다. 문을 닫는 날엔 20분 거리를 운전해 나가야만 했으니, 지금 봉담의 이지바이 대형마트에서 느끼는 쾌적한 장보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설날 풍경’의 시작은 이 점방의 진열대가 화려하게 바뀌면서부터입니다. 평소엔 살 엄두도 못 내던 커다란 장난감, 화약 총, 폭죽들이 잔뜩 진열되었습니다. 어른들에게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의 주머니를 겨냥한 것이었죠. 명절 3~4일 전부터 동네 곳곳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와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비로소 “설날이 코앞이구나” 하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2. 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명절 놀이와 특선 영화

명절이 기다려졌던 가장 큰 이유는 뿔뿔이 흩어져 살던 사촌들과 삼촌, 이모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난감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사촌들과 윷놀이 등 명절 전통 놀이를 하거나 트럼프 카드를 치고, 학교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지상파 3사(KBS, MBC, SBS)에서 방영해 주는 명절 특선 영화도 빼놓을 수 없죠. 성룡이나 이연걸이 나오는 홍콩 무술 영화, 밤늦게 해주는 터미네이터나 실베스터 스탤론의 액션 영화는 온 가족이 이불을 덮고 모여 앉아 보는 필수 코스였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신문에 끼워져 나오는 명절 방송 편성표 페이지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쳐가며 기다리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3. 대중목욕탕에서의 혹독한 신고식
명절 직전 주말에는 꼭 대중목욕탕을 갔습니다. 버스로 30분 거리에 살던 4살 터울의 사촌 형이 오면 우리는 항상 대중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형은 제게 때 미는 법부터 냉탕에서 노는 법까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대중목욕탕에서 아이들이 버릇없이 굴거나 시끄럽게 떠들면, 모르는 할아버지들이 불호령을 내리며 혼을 내곤 했습니다. 부모님들도 오히려 동네 어르신들이 예절을 가르쳐 주신다며 감사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밖에서 팔던 닭꼬치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때를 너무 빡빡 밀어서 온몸이 붉어진 채로 마시던 바나나맛 우유와 닭꼬치의 맛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4. 발이 꽁꽁 얼었던 마당에서의 차례상

명절 당일, 친척들은 모두 할아버지 댁으로 모였습니다. 집이 좁아 창고에서 교자상을 여러 개 꺼내 마루부터 방까지 빈 공간마다 폈습니다.
설날은 1, 2월의 한겨울이라 날씨가 매서웠지만, 차례는 꼭 문을 활짝 열고 지내야 했습니다. 조상님들이 들어오셔야 한다며 거실 쪽에 차례상과 병풍을 치고, 문을 활짝 연 뒤 마당이나 마루에 얇은 돗자리를 깔고 절을 했습니다. 신발을 벗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할 때면 발이 끊어질 듯 시렸습니다.

차례가 끝나면 온 가족이 성묘를 하러 산에 올랐습니다.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나고 나면 남은 음식을 다 함께 나누어 먹었죠. 식사가 끝나면 서둘러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친척들도 있었습니다.
집을 나서는 친척들의 양손에는 할머니가 검은 비닐봉지에 꾹꾹 눌러 담은 명절 음식이 들려 있었습니다. 동네를 시끄럽게 채우던 폭죽 소리가 하나둘 잦아들 무렵, 길었던 명절도 조용히 끝이 났습니다.

5. 시대의 흐름,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
지금 제 두 누나의 아이들, 즉 조카들이 생기면서 가족의 형태는 변했지만 명절에 모이는 규모는 옛날보다 훨씬 작아졌습니다. 이제 저희 집은 차례도 지내지 않고, 산으로 성묘를 가지도 않습니다. 저 역시 세뱃돈을 받는 아이에서, 이제는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쥐여주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리게 되는 그 마음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처가 식구들과 남아공 바베큐를 즐기며 정을 나누는 시간처럼, 제 딸이 자라면서 겪게 될 설날과 추석은 또 어떤 따뜻한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
한국에 살고 계신 외국인 친구분들이나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지난 설 연휴 가족을 떠올리며 따뜻한 시간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곳 한국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여러분만의 새롭고 즐거운 명절 문화를 만들어 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90년대와 비교했을 때, 요즘 한국의 설날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과거에는 온 친척이 고향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직접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요즘은 차례를 생략하거나 간소화하고, 명절 연휴를 이용해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문화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Q2. 설날에 어른들께 큰절을 하고 받는 돈을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세뱃돈’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큰절(세배)을 올리면, 어른들은 덕담과 함께 봉투에 신권을 넣어 주시는 전통입니다.
Q3. 명절에 주로 먹는 한국의 전통 음식은 무엇인가요?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떡국’입니다. 맑은 국물에 하얀 가래떡을 썰어 넣은 떡국을 먹으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